2012년 10월 24일 수요일

문제 어려울수록 잠 실컷 자라?

문제 어려울수록 잠 실컷 자라?

수면과 문제해결력 연관성 찾아내

 
‘삼당사락(三當四落)’이라는 말이 있다. 수험생이 잠을 하루에 3시간 자면 합격하고 4시간 자면 탈락한다는 뜻이다. 잠을 줄여가면서 열심히 공부해야 원하는 대학에 붙는다는 일종의 경고다.
▲ 문제가 어려울수록 잠을 자고 난 후에 고민하는 것이 해결책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ScienceTimes
그러나 잠을 적게 자는 것이 오히려 성적을 떨어뜨린다는 증거가 많다. 잠을 8시간 이상 자고 시험을 치면 성적이 30퍼센트 이상 좋게 나온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그런데 잠을 충분히 잤을 때 문제해결 능력이 현저히 높아진다는 결과가 발표돼 화제다. 영국 랭카스터대 연구진은 총 61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해 이 같은 결과를 얻었다. 문제를 제시하고 곧바로 대답하거나 일단 잠을 자거나 깨어서 고민하는 세 가지 그룹으로 나누자, 문제가 어려울수록, 그리고 잠을 자고 일어나서 대답할수록 해답을 찾아낼 확률이 높았다.

연구결과는 ‘어려운 문제는 머릿속에 담고 잠들라: 문제해결과 수면의 관계(Sleep on it, but only if it is difficult: Effects of sleep on problem solving)’라는 논문으로 정리돼 학술지 ‘기억과 인지(Memory & Cognition)’ 최근호에 게재됐다.

잠 덕분에 문제 해결한 사례 많아

과학자들 중에는 잠을 자면서 해답을 얻어낸 경우가 종종 있다. 독일의 화학자 프리드리히 케쿨레 (Friedrich Kekule, 1829~1896)는 꿈을 통해 벤젠(benzene)의 화학적 구조를 밝혀낸 것으로 유명하다.

등불의 원료로 쓰이며 석탄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추출되는 벤젠은 벤졸(benzol)로 불리기도 하며 탄소 여섯 개와 수소 여섯 개가 합쳐져 하나의 분자를 이룬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화학식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없었는데 케쿨레가 둥그런 고리 모양으로 연결됐다는 해답을 찾아냈다.
▲ 독일의 화학자 케쿨레는 꿈을 통해서 벤젠의 화학 구조를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Wikisource.org
케쿨레는 독일 화학회 설립 축하연에서 비밀을 털어놓은 바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깜빡 잠이 들었는데 벤젠의 화학식이 뱀으로 변하더니 자기 꼬리를 물고 뱅뱅 돌더라는 것이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소리에 잠을 깬 케쿨레는 방으로 달려가 고리 모양 화학식을 완성했다.

독일의 약리학자 오토 뢰비(Otto Loewi, 1873~1961)는 1920년 어느 날 개구리를 대상으로 신경 전달을 실험하다 잠이 들었다. 꿈에서 유용한 정보를 목격한 그는 잠결에 메모를 남겼지만 글씨가 엉망이라 판독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음날에도 같은 꿈을 꾼 덕분에 해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자극이 생기면 신경 끝부분에서 화학물질이 분출돼 다른 기관으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덕분에 뢰비는 193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이외에도 잠 덕분에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아낸 사례는 많다. 1974년 로잘린드 카트라이트(Rosalind Cartwright)는 ‘각성 시와 수면 시의 문제해결 능력 비교(Problem solving: Waking and dreaming)’라는 논문을 발표해 잠과 창의성의 관계에 대한 논란에 불을 지폈고, 이에 후속 연구가 잇따랐다.

최근에는 영국 랭카스터대학교 인간개발 및 학습 연구센터(Centre for Research in Human Development and Learning) 소속 연구진이 수면과 문제해결 능력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밝혀냈다. 특히 문제가 어려울수록 일단 잠을 잤다가 일어난 후에 고민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결론이다.

어려운 문제는 자고 일어난 뒤 푸는 게 좋아

연구진은 남자 27명, 여자 34명 등 총 61명의 영국 청년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평균 연령은 20.5세 정도였다. 이들은 2003년 미국 노스웨스턴대 심리학과의 마크 융비먼(Mark Jung-Beemahn) 교수가 제안한 원격연상검사(RAT) 중 쉬운 난이도와 어려운 난이도를 섞어 30개의 문제를 제시받았다.

시험은 두 번에 걸쳐서 동일한 문제를 푸는 것으로 진행됐으며, 피실험자들은 3개의 그룹으로 나뉘었다. 제1그룹(Control Group)은 쉬는 시간 없이 연속으로 두 번의 시험을 치렀다. 제2그룹(Incubation Group)은 아침 9시에 첫 번째 시험을 치르고 12시간 후인 밤 9시에 두 번째 시험을 치르되 그동안 깨어 있어야 했다. 제3그룹(Sleep Group)은 밤 9시에 첫 시험을 치르고 잠을 잤다가 다음날 아침 9시에 재시험을 치렀다.
▲ 문제가 어려울수록 곧바로 재시험을 치른 그룹(Control)이나 12시간 쉬었다 치른 그룹(Incubation)보다는 잠을 자고 일어난 그룹(Sleep)이 가장 높은 정답률을 보였다. ⓒMemory & Cognition
그러자 잠을 자고 재시험을 치른 제3그룹의 문제해결 능력이 현저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너무 어려워서 첫 번째 시험에서는 답을 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쉬는 시간 없이 바로 다시 풀어야 했던 제1그룹이나 12시간 동안 깨어 있다가 재시험을 치른 제2그룹보다 높은 점수였다. 잠을 충분히 자는 것이 문제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증거였다.

논문은 기억력에 관한 이론 중 활성화 확산(spreading activation)이라는 용어를 통해 원리를 설명했다. 머릿속에 기억된 개념들은 관련 항목들과 얽혀서 저장돼 있는데 활성화 작용이 일어나면 연관된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떠오른다. ‘빨갛다’는 생각을 하면 불, 장미, 태양, 피, 일몰, 병원, 가시, 화상, 위험 등의 개념이 연상적으로 떠오르는 식이다.

깊은 잠에 빠지는 REM 수면 중에는 활성화 확산 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난다. 취침 전에 제시받은 자극과 연관된 내용들이 무의식적 기억 속에서 의식 수준으로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잠에서 깨어나면 어제는 풀리지 않았던 문제의 해결책이 보이는 이유다.

그러나 쉬운 문제를 풀 때는 잠을 잔다 해도 점수가 오르지 않았다. 어려운 문제를 풀었을 때에만 수면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잠은 공부에 도움이 되지만 쉬운 문제마저도 미뤘다가 잠부터 자야겠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논문에 공저자로 참여한 파드럭 모너핸(Padraic Monaghan) 심리학과 교수는 노스워싱턴대학교의 발표자료를 통해 “잠을 잘수록 창의성이 계발돼 문제해결 능력이 좋아진다는 속설이 있었다”며 “처음 풀었을 때 해결이 되지 않으면 한 켠으로 문제를 치워둔 채 잠을 자는 것이 낫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또한 “수면 효과는 문제가 어려울수록 빛을 발한다”고 덧붙였다.



임동욱 객원기자 | im.dong.uk@gmail.com

저작권자 2012.10.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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