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18일 목요일

멕시코 벽화의 탄생

멕시코 벽화의 탄생

디에고 리베라 '무기 배급 - 혁명의 발라드 부분'

 
나비효과란 브라질에서 시작된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는 과학 이론이다. 작은 차이가 결과에서는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 나비효과는 과학뿐만 아니라 정치, 문화, 예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현대에서는 디지털과 매스컴의 확산으로 주변에서 나비효과를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에서 문화적으로 나비효과 현상이 일어났던 시기는 1980년대다. 멕시코의 사회적 사실주의인 리베라의 벽화는 1980년대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민중 예술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우리나라 민중 예술은 1980년대 노동자들의 삶을 통해 민주화의 열망을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 이전에 그려진 대부분의 그림은 부르주아의 우아한 삶이 주제였다.

1920년대 멕시코에서 시작된 벽화운동의 시발점은 1910년 발발한 멕시코 혁명이었다. 라틴아메리카의 백인 지배자들에 대한 인디오들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해 일어난 멕시코 혁명은 인디오의 문화와 생활방식을 보존하고 부흥시켜야 한다는 인디오 전통 부흥운동으로 이어진다.

벽화는 근대 멕시코의 시각예술운동으로서 민족주의적 행위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이는 급진적인 실천미술의 서막을 알렸을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중요한 혁명사를 내포하고 있어 멕시코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벽화는 멕시코를 넘어서 라틴 아메리카, 미국, 구소련에까지 관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이후 20세기 후반 여러 나라의 화가에게 영향을 미쳤다.
▲ <무기 배급-혁명의 발라드 부분>-1923~1928년, 203*398(전체 1585), 프레스코 화, 멕시코시티 교육부

리베라의 대표적인 벽화인 ‘무기 배급-혁명의 발라드 부분’은 멕시코 혁명을 표현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화면 중앙 붉은색 옷을 입은 프리다 칼로가 노동자들에게 무기를 배급하는 일을 도와주고 있다. 짙은 눈썹이 프리다 칼로를 상징하며, 이 작품을 제작할 당시 그녀는 멕시코 공산당 당원으로 활동했다. 프리다는 계급투쟁을 위해 무장봉기한 노동자들을 지지했다.

프리다 뒤에 있는 인물은 노동자들을 선동하고 있는 혁명의 지도자다. 화면 오른쪽에 말을 탄 한 무리의 인디오들과 노동자들이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은 무장봉기를 의미한다.

화면 왼쪽의 크게 그려진 노동자는 리베라의 친구로, 그 역시 열렬한 공산주의자다. 오른쪽 붉은색 블라우스와 검정색 스커트를 입은 여인은 쿠바 공산주의자 메야의 연인이며 그 옆에 서 있는 인물이 메야다. 그는 벽화 제작 당시 멕시코에 망명했었다.

이 작품은 1920년대 후반 리베라가 멕시코 정부를 위해 완성한 벽화 중 하나다. 리베라는 연작에 멕시코 사람들의 열망을 담기 위해 실제 사건과 상상의 사건을 함께 그려 넣었다. 또한 그는 사람들에게 쉽게 읽힐 수 있도록 검은색 윤곽선과 대담하고 대조적인 색채를 사용했다.

리베라는 다른 사회주의 미술가들처럼 미술이 직접적으로 사회적, 정치적 기능을 해야 한다고 믿었으며, 리베라의 이러한 가치관은 멕시코 미술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이 작품은 당시 멕시코 교육부 장관에 의해 정부 문화정책으로 추진 중이었던 벽화운동의 일환으로 그려졌다. 이때부터 리베라는 사회혁명의 이상과 민중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그의 작품에 전통적인 요소가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은 멕시코 정부가 ‘멕시코적인 것’을 강조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디에고 리베라(1886~1957)는 멕시코에서 가장 존경받는 예술가이자 현대 라틴문화를 대표하는 예술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정치적으로 깨어 있으면서도 사고는 자유로우며 비종교적이었다.

그의 작품은 농민과 노동자 같은 억압받는 계층뿐만 아니라 그들의 전통의상이나 민속풍습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리베라는 멕시코 전통 아카데미에서 미술을 공부하던 중 장학금을 받아 스페인에서 공부를 시작하지만 스페인 예술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당시 화가들의 로망이었던 파리로 건너가 그곳에서 당시 세계 미술을 주도했던 신인상주의에서 큐비즘에 다양한 미술 사조를 경험했다.

15년 동안 유럽에 거주했던 리베라는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프레스코 벽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1921년 멕시코로 돌아온 리베라는 유카탄 반도를 여행하던 중 그곳 원주민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흥미를 느끼면서 작품에 멕시코 전통 문화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때 리베라는 교육부에 고용돼 엄청난 벽화 작업을 하면서 멕시코 벽화 운동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그는 벽화 작업을 통해 멕시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했다.


박희숙 서양화가, 미술칼럼니스트

저작권자 2012.10.1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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