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0일 토요일

건강한 시골생활 그것은 옛말?

건강한 시골생활 그것은 옛말?

도시사람이 건강하고 오래 살아

 
서울 근교의 전원도시로는 양평을 꼽는다.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과 북한강을 굽어보고 울창한 숲을 뒤로 한 채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담한 전원주택들은 그저 감상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아늑해진다. 게다가 시원한 계곡들이 있어 청량함을 더해 준다.

그런데 최근 이곳 전원주택 가격이 폭락하고 있다는 소식이 매스컴을 타고 전해 온다. 매물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는 반면 살 사람은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 그런데, 갑자기 웬 부동산 타령이냐고?

양평 전원주택에서 2년간 살다가 결국 서울로 복귀한 양 모씨는 "말이 전원생활이지 기대만큼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처음 1년은 좋았지요. 하지만 고스톱 치는 것 외에는 부부가 할게 없더군요. 물건 사러 가기도 어렵고, 잔디밭에 풀 뽑는 게 장난이 아니더군요. 그리고 이웃과 친하게 지내기도 어렵더군요”

많은 사람들은 도시보다 한적한 시골에서 맑은 공기 마시면서 사는 것이 건강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시골에서 사는 것보다 도시에서 사는 것이 건강에 더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들이 속출하고 있다. 몇 가지 예들을 소개해 본다.
▲ 시끄럽고 북적대는 도심을 떠나 마음의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시골생활은 사람들의 꿈이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오히려 도시 사람들이 건강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사진은 밀레의 작품 '이삭 줍는 여인들' ⓒ위키피디아

건강하지 않은 카운티 84%가 시골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와 로버트 우드 존슨 재단 공동 연구팀은 최근 미국의 각 지역별 건강 상황을 조사하는 ‘카운티 건강 랭킹(County Health Rankings)’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결과 미국에서 건강한 카운티로 선정된 지역 가운데 48%가 도시나 도시 인근 교외 지역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건강하지 않은 카운티로 선정된 곳 가운데 84%는 시골이었다.

이는 시골에서 사는 것이 도시의 삶보다 건강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고정관념과 상반된 것이다. 연구팀이 건강의 척도로 삼은 것은 조기 사망률과 출산 때 유아의 체중, 각종 질병에 걸릴 확률, 흡연과 비만, 음주 및 각종 범죄율 등이다.

이번 연구에서 나타난 특이한 점은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라고 반드시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도시 인구가 200만 명에 이르는 밀워키의 경우 위스콘신 주에서 가장 건강 상황이 안 좋은 곳으로 나타났지만 반대로 뉴욕처럼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는 양호한 건강 상태를 나타냈다.

연구팀은 “몇몇 시골은 경제적으로도 풍요롭지 않고 사회적 안전장치도 충분히 갖추고 있지 않았다”면서 “이런 요소들이 전반적으로 지역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친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치매발생률 시골이 두 배나 높아
시골에서 나고 자란 이들의 알츠하이머병에 의한 치매 발병률이 도시 생활자들에 비해 두 배나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치매의 종류는 다양하다. 알츠하이머병은 그 중 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퇴행성 뇌 질환으로 매우 서서히 발병해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특징이 있다.

영국 에든버러 대학 연구팀은 지난 수십 년간 나온 학술 논문 51개를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이 같은 사실을 밝혀냈다. 이 논문들은 영국, 미국, 캐나다, 나이지리아, 페루 등의 사람 1만2000 여명의 의학적 기록을 담고 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도시와 시골 생활자 간에 총 치매 발병률의 차이는 별로 없었다. 그러나 알츠하이머병에 의한 치매 발병률에서는 눈에 띌 정도로 차이가 나타났다.

이번 연구를 이끈 톰 루스 박사는 “시골 생활 자체에 특별히 해로운 점이 있다기보다는 도시에서 생활하는 것에 따른 이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건 의료 시설에 대한 접근성, 특정 미확인 물질에의 노출 등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국 알츠하이머 연구소의 사이몬 리들리 박사는 “거주 지역과 알츠하이머병 발병 간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하지만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가라고 할 만큼 뚜렷한 증거가 확인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내는 것이 발병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시골 생활을 얼마나 오래 하느냐가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등을 고려해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그는 지적했다.

도시사람들이 병에 대한 저항력도 높아
도시는 인간진화에 분명히 영향을 미쳤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길러지도록 진화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과거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기 때문에 각종 질병에 대한 노출이 많아 질병이 더 잘 옮았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후손들은 질병 감염에 대한 저항력이 증가했다는 것.

영국 런던 대학 이안 반스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17명의 DNA 샘플을 분석했다. 분석 대상자들은 기원전 6000년 전 도시화를 이룩한 터키 차탈회육(Çatalhoyuk) 지역의 민족부터 20세기에 정착한 아프리카 수단 주바(남수단의 수도) 지역 민족까지 다양했다.

차탈회육은 요르단강 서안의 예리코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공동 주거 유적이다. 기원전 6500년경 신석기 문화를 나타내는 아나톨리아(소아시아, 터키를 일컫는다) 인류 최초 집단 거주지다.

연구팀의 분석 결과 도시화가 오래된 지역의 사람들은 결핵과 나병 같은 질병 감염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유전자가 변이했다. 연구진은 결핵, 나병을 일으키는 세포 속에 살고 있는 세균에 자연적으로 저항하는 ‘SLC11A1 1729+55del4’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름을 가진 유전자의 변이를 확인했다.

예를 들어 5200년 전부터 이란의 수사(Susa, 지금의 Shush) 지역에 정착한 사람들은 이 변이된 유전자를 대부분 가지고 있었다. 반면 정착한지 몇 백 년 밖에 되지 않은 러시아 극동부 야쿠츠크 지역의 사람들은 70~80%만 변이된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다.

반스 교수는 “사람들이 한 곳에 정착해 모여 살기 시작하는 과정인 도시화는 인간 유전체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도시화가 오래된 지역일수록 결핵 같은 질병에 대한 면역력이 강해진다”고 설명했다.


김형근 객원기자 | hgkim54@naver.com

저작권자 2012.10.1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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