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17일 수요일

몸에 대한 철학적 사유

몸에 대한 철학적 사유

소마미술관, '몸의 사유' 전시회

 
아무리 영상매체와 SNS가 발달되었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기본적 의사소통의 매체는 몸이다. 외국 여행을 가도 몸동작만으로도 반은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만큼 몸은 생각을 표현하는 아주 기본적 도구이다.

소마미술관의 ‘몸의 사유전(Thought on Body)'은 바로 육체와 정신, 몸과 사유는 동전의 양면임을 보여주고 있다. 12월 16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 참여한 12명이 작가들은 다양한 표현방식을 통해 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몸으로 표현된 현대인들의 문제

이번 전시는 총 4개의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제1전시실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작품은 김준 작가의 ‘모에 샹동’이다. 디지털 프린트된 이 작품은 얼굴은 없고 몸통만 있을 뿐이다. 거기다 몸 곳곳에 고가의 제품들이 문신되어 있다. 몸 속에 각인된 인간 욕망이 헛됨을 표현하고 있다.
▲ 김준 작가의 돔페리뇽 ⓒ소마미술관

이용백 작가의 ‘피에타-자기죽음’은 조각 작품이다. 성스러운 성모마리아 대신 무표정한 사이보그가 조각되어 있다. 품에 안은 매끈한 분홍색의 사이보그를 무표정하게 쳐다보고 있다. 이는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고 있는 현대사회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제2전시실을 들어서면 ‘한 사람 혹은 여러 사람’이라는 벽면 위에 가변 설치된 작품을 만나게 된다. 변웅필 작가의 작품이다. 여러 동작을 하는 사람들이 한 벽면에 펼쳐져 있다. 하지만 그 동작은 춤을 추는 것도 아니고 한 번쯤 일상에서 우리가 해봄직한 움직임들이다.

이 작품의 특징은 머리카락이나 눈썹 등이 지워져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작가의 의도이다. 얼굴은 다름을 나타내는 표시이다. 그것을 일부러 지워버림으로 해서 결국 인간은 몸을 가진 똑같은 존재임을 드러내고 있다.

최수앙 작가는 소통 부재의 문제를 인체를 통해 말하고 있다. ‘정착민’이라는 작품이 ‘인공섬’이라는 작품을 향해 바라보는 모습으로 전시되어 있다. ‘정착민’의 모습은 독특하다. 여성의 몸을 하고 있지만 얼굴은 해골로 조각되어 있고 다리는 가구의 다리를 갖고 있다.

그 ‘정착민’이 바라보고 있는 곳은 ‘인공섬. 석유를 뽑아내는 시추선 위에 서울을 대표하는 종로가 조각되어 있다. 작가는 한 도시를 빼곡히 채운 구조물을 관리하고 통제를 위해 만들어지는 시스템과 시스템화되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해내고 있다.

제3전시실의 이동재 작가는 쌀을 이용하여 픽셀 초상 작업을 해왔다. 하지만 2010년부터 알파벳을 이용하여 작품을 창작하기 시작했다. 알파벳이라는 기호가 하나의 이미지가 되면서 작품에 이중적 내용을 품게 됐다. 특히 그의 작품은 어디서 본 듯한 작품을 차용해 새롭게 재구성하고 있다. 구글이나 위키피디아의 발췌 원고로 만든 ‘삼미산’, 앤디 워홀의 작품을 이용한 ‘두개골’, 영화 스틸 컷을 이용한 ‘성난황소’가 이번 전시되는 작품들인데, 이미지와 기호를 이용해 또 다른 소통의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 문성원 작가의 음표 Note ⓒ소마미술관

이병호 작가의 조각들은 숨을 쉰다는 독특함이 있다. 로댕의 ‘다나이드’는 대리석이 아니라 실리콘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내부에는 기계장치가 설치되어 있어 마치 피부가 부풀리고 쪼그라드는 느낌을 전달한다. 3초라는 찰나의 순간을 통해 인간이 사는 세월을 보여준다. 무라카미 다카시의 ‘히로판’과 제프 쿤스의 ‘부르주아 버스트, 제프와 일로나’를 패러디한 조각품도 마찬가지로 늙어가는 피부의 변화를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몸으로 보여주는 다양한 이야기

제4전시실은 6명의 작가들이 몸을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김기라 작가의 ‘이념의 무게’라는 작품은 다소 무거운 제목이다. 신화를 바탕으로 그려진 그림들 속에 사람들은 각기 말풍선을 갖고 있다. 한숨일 수도 있고 애환일 수도 있는 이 말풍선을 통해 작가는 현대인들의 소통 부족을 담아내고 있다.

‘토르소’는 권오상 작가의 작품이다. 토르소는 말 그대로 팔다리가 없는 조각 작품을 일컫는 말이다. 권오상 작가가 보여주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조각에도 바퀴와 유리창 등이 없다. 오로지 몸통 밖에 없는 이 작품은 사진을 다각도로 찍어 조작조각 입체에 붙여 형태를 만들어냈다. 현대인들이 사용하는 기계 안에도 인간의 몸이 담겨 있음을 표현해내고 있다.

이형구 작가의 ‘안구정화’는 마치 SF 영화 속의 한 장면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많은 거울에 둘러싸인 의자.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시각적 자극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의자에 앉으면 그 거울을 통해 여러 장면을 모자이크처럼 볼 수 있다. 곤충이나 물고기와 같은 다른 생명체의 시각기관으로 보는 듯한 느낌마저 전달하고 있다. 원래 이형구 작가는 사물을 해체하고 재결합하는 작업 방식을 선호하는데, 이번 전시회에서도 그 특징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 권오상 작가의 토르소 ⓒ소마미술관

문성원 작가는 음표를 옮기는 작업을 한다. 피아노 연주자가 바뀌는 음표에 따라 연주를 한다. 처음에는 아리랑이었던 음악이 현대 음악이 되고 종국에는 음을 연주해낼 수 없는 상황마저 연출된다. 그리고 음표로 된 작가의 자화상이 마지막에 남겨지게 된다. 이는 문 작가가 유학 당시 느꼈던 언어소통의 어려움과 문화적 차이에서 겪은 혼동을 담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문 작가의 ‘음표’는 퍼포먼스 작품이다. 비디오를 통해 영상기록이 함께 전시되고 있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생존은 역사이다’는 1945-1995년 사이 전 세계에서 일어난 전쟁과 기아, 생태변화 다큐멘터리와 뉴스 등을 총 망라하여 작가적 시선으로 영상을 재편집한 작품이다. 육근병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몸은 시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라지지만 기록을 만들어내는 스토리 주체임을 드러냈다. 즉 그는 몸이란 개인의 사유물이 아니라 거시적으로 역사의 증거로 보고 있는 셈이다.

재미교포 작가 데비 한은 ‘미의 조건’이란 작품을 통해 미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미의 상징인 비너스를 백자로 만들었다. 9점의 비너스 모습이 각기 다르다. 눈이 작은가 하면 코가 지나치게 뾰족하고 입술이 크거나 두툼하다. 미의 기준 대한 비판이기도 하지만 획일화된 시각과 시스템에 대한 문제 제기라고 할 수 있다.


김연희 객원기자 | iini0318@hanmail.net

저작권자 2012.10.1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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