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3일 목요일

카메라에 담긴 '바다 속 상상의 세계'

카메라에 담긴 '바다 속 상상의 세계'

우리나라 최초 내셔널지오그래픽 다이버, 와이진

 
와이진은 우리나라 최초 내셔널지오그래픽 다이버이자 한국의 유일한 수중전문 작가이다. 아직 한국은 그의 진가를 제대로 모르고 있지만 세계는 벌써 차세대 작가로 인정하고 있다. 그를 만났다.

“수중촬영의 매력은 앵글의 제한이 없어 표현의 한계가 덜하다는 거예요. 수중에서는 육지와 환경이 아주 달라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내지 않아도 효과가 난다는 점이 볼 때마다 신기하고 매력적이에요. 예를 들어 육지에서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후루룩’ 날리잖아요. 그러나 물속에서는 물결에 따라 ‘후우루우룩’ 퍼지거든요. 재미있지 않나요?”

음반사진 하나가 수중사진작가로 인도
▲ 음반사진 하나가 수중 사진작가로 인도했다 ⓒ와이진

대학시절 유명한 공모전에 입상할 만큼 촉망받던 의상학도였던 와이진. 그를 사진으로 이끈 사람은 우리나라 스타 사진작가인 김중만 씨다. 디지털카메라에 담긴 자신의 사진을 보고 ‘너 사진해라’라는 김중만의 한마디에 낯선 세상으로 발을 들여놓게 됐다.

“제가 록음악을 많이 좋아해요. 어느날 너바나 음반케이스 사진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수중 사진인데 몽환적이면서 뭐랄까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든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어떻게 찍었는지 막 궁금해지더라고요.”

와이진은 외국에 나가 있는 친구들을 통해 작가가 누구인지 어떻게 하면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를 알아봤다. 수중 사진을 찍으려면 다이버가 먼저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친구의 조언에 바로 스킨스쿠버를 배우기 시작했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어릴 적 수영을 배울 때 선생님이 가르쳐주던 호흡이 자신에 맞지 않아 계속 물만 먹었던지라 물에 대한 공포감이 있었다. 선천적으로 심장이 정중앙에 있어 폐도 남들보다 작았다. 물론 이 신체적 약점이 지금은 오히려 장점이 됐다. 폐가 작기 때문에 물속에서 공기 소모가 적어 남들보다 유리한 것.

쉽지 않았던 수중전문작가의 길
▲ 신체적 핸디캡으로 아직도 수중사진 전문작가의 길은 쉽지 않다 ⓒ와이진

“스킨스쿠버 코스에 합격하고 나서 카메라를 들고 물속으로 들어갔어요. 이제까지 해오던 것이 있었으니 잘해낼 것이라고 자신만만했었죠. 그런데 물속에서는 물 밖에서 그동안 쌓아왔던 데이터가 무용지물이더라고요.”

1미터씩 내려갈수록 빛이 사라지는 바다라는 새로운 세계. 이미 육지에서는 베테랑이었던 와이진 역시 바다의 색감을 담아내기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우리나라에 자신을 지도할 스승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궁하면 찾아내는 법’. 와이진은 국외 유명 수중사진가의 작품과 웹사이트 주소를 통해 자료를 얻고 공부했다. 해외에서 열리는 다이버박람회도 부지런히 다니며 세계적인 수중사진작가들을 만나 교류를 했다.

수중사진은 아무래도 육지에서 찍는 것보다 환경이 더 위험하다. 그런데 초창기에는 신기하고 너무 재미있다 보니 안전수칙을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공기통에 공기가 다 된 줄을 몰랐던 적도 있다. 너무 몰입해서 사진을 찍다 보니 그만 깜박해 큰일 날 뻔한 적도 있다.

상어 때문에 혼난 적도 있다. 자극시키지만 않으면 위험하지 않은 상어. 그런데 상어를 향해 계속 번쩍이는 사진장비를 들이대니 그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위기를 모면했지만 지금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고 와이진은 말했다.

극복해야 할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와이진은 수평감각이 남들보다 떨어져 자꾸 멀미를 느낀다. 남들보다 달팽이관이 작기 때문이다. 특히 파도가 거친 날에는 심하다.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수중사진을 찍다가 기절했었다. 다행히 배 위에서 올라온 후 벌어진 사태여서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당시 옆으로 누워서 기절하는 바람에 몸 반쪽만 검게 태닝된 웃지 못 할 에피소드도 갖고 있다. 그래서 요즘도 바다 속 촬영을 나가기 전에 항상 바다의 파도를 점검한다. 심할 때는 멀미약을 잔뜩 먹고 사진을 찍는다.

상상을 자극하는 세계, 계속 도전하고파
▲ 수중촬영을 위해서 지속적인 공부와 훈련이 필요하다 ⓒ와이진

“우리가 보는 바다는 그냥 하나의 파랑색 바다이지만 그 속은 어느 한 곳도 같은 곳이 없어요. 우리나라만 해도 그래요. 동해는 보랏빛이 날 정도로 차갑고 무서운 느낌이 들어요. 반면 제주도는 따뜻하고 포근해요. 거기다 높고 길게 하늘거리는 미역들이 밭을 이루고 연산호가 화원을 이루기도 하죠. 상상력마저도 그 소스가 달라서 각기 다른 상상을 하게 되는 곳이에요.”

수중을 촬영하면서 바다 사랑도 더욱 애틋해졌다. 특히 제주도.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지정되는 것을 보고 그는 바다 속도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었다. 세계 그 어디에도 볼 수 없는 유산호가 흐드러지게 자라는 곳이기 때문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아시아 담당 수중작가를 사비로 초청해 함께 사진을 찍으며 홍보를 많이 해달라고 부탁했을 정도이다.

그는 지금 바닷속 동굴을 탐험하면서 작품을 찍을 계획이다. 이 작업을 하기 위해 케이브(cave) 자격증을 작년 말에 땄다. 동굴 속은 빛이 없는 바다에서도 더욱 컴컴한 곳이다. 위와 아래로 맘대로 움직일 수 없는 곳이다. 들어간 만큼 나와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작업을 할 생각으로 들떠 있다.
▲ 우리나라 최초 내셔널지오그래픽 다이버이자 한국 유일 수중전문 작가, 와이진 ⓒ와이진
“물론 원래 계획보다 늦어지긴 했지만 작업할 날이 기다려지고 있답니다. 육지와는 또 다른 동굴의 세계이기 때문에 저도 기대되는 것이 많습니다. 멋진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요?”

와이진은 남극 수중촬영을 위한 준비도 하고 있다. 워낙 차가운 물속이기 때문에 저체온에 대해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내셔널지오그래픽 수행 미션은 대부분 선배작가가 다녀온 안전한 곳에만 배정됐다. 하지만 점차 단계를 높여 북극을 넘어 남극에 도달하고 싶다는 목표를 세웠다.

“남극으로 바로 갈 순 없어요. 차근차근 단계를 밟고 중간에 일본 오키나와 등지에서 체험훈련도 해야 하고요. 또 남극에서 만나는 바다친구들에 대해서도 공부해야 하고요. 꼭 남극의 바다 속을 나만의 시각으로 담아내고 싶습니다.”


김연희 객원기자 | iini0318@hanmail.net

저작권자 2013.01.0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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