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5일 화요일

나노, 독성은 빼고 해상도는 높였다

나노, 독성은 빼고 해상도는 높였다

[인터뷰] 현택환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중견석좌교수



21세기의 의료기술에서 중요한 과제로 남은 질병, 암. 암의 정복을 위해 과학계와 의료계는 다양한 연구를 통해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특히 1990년대 후반 이후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나노입자를 활용한 치료법이다.

일반적으로 암 등의 질병이 몸 안에 발생할 경우 MRI와 PET, CT와 같은 영상장비로 촬영한 후 수술을 통해 해당 부위를 잘라내는 것을 기본 치료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정상조직과 암 조직의 경계를 정확히 진단하고 암 조직만을 정확하게 잘라내는 것은 현재 영상기술의 낮은 해상도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나노입자를 활용한 광학영상이 개발된 초기, 높은 해상력과 밝은 신호를 낼 수 있다는 장점으로 차세대 조영제로서 활용가치의 가능성을 보이기도 했지만 나노입자가 중금속 기반 물질인 만큼 독성문제가 발생해 나노입자 자체의 효용성에 의문을 갖게 됐다.

이런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독성이 거의 없는, 체내 필수 구성성분으로 이뤄진 황화아연 나노입자를 개발했다. 연구팀은 해당 입자 내부에 오렌지색의 밝은 신호를 내는 망간을 도핑해 황화아연의 효율을 최대화, 국내외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고해상 삼광자-인광 생체 광학영상 구현 성공

“암 부위를 정확히 잘라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뇌와 같은 신체의 중요한 부분에서 암이 발생했을 경우 경계부위의 정보를 정확히 확보하는 것은 질병의 완치율을 높이고 수술 후 후유증을 줄이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 현택환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중견석좌교수  ⓒIBS

현택환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기술은 무독성 반도체 나노입자를 활용한 고해상 삼광자(三光子) 인광 생체 광학영상을 구현한 것이다. 자외선이나 가시광선에 비해 높은 조직 투과성을 가진 근적외선 광선(950nm)을 사용, 삼광자 흡수현상에 의한 신호를 통해 생체 내에서도 하나하나의 세포까지 관찰이 가능한 높은 해상도의 영상을 획득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와 같이 무독성 나노입자를 활용한 생체광학영상에 최초로 성공한 것은 생체 내에서도 마이크로미터단위의 세포를 구별할 수 있는 수준의 광학영상 획득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기반으로 앞으로 진행될 후속연구에서는 생체 내에서 정밀한 암 진단 및 치료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어 암 치료 기술을 진일보시켰다고 볼 수 있다.

나노입자는 암 치료에 새로운 길을 개척해 줄 것으로 기대 받았지만, 입자를 구성하고 있는 카드뮴과 납, 비소 등 유해원소들로 인해 인체 내에서의 적용이 불가능하다고 인식돼 왔다. 이에 현 교수팀은 중금속 기반의 나노입자 대신 독성이 적고 인체구성의 필수원소인 아연과 황으로 구성된 황화아연 나노입자를 합성한 뒤 여기에 소량의 망간 이온을 도핑, 매우 밝은 오렌지색 인광을 구현했다.

구현한 황화아연 나노입자를 통해 고행상도 생체 광학 영상을 얻고자 노력했던 연구팀은 연구 도중 해당 나노입자가 매우 높은 효율의 ‘삼광자 현상’이라는 특이한 양자역학적 성질을 갖고 있음을 발견했다.

“삼광자 현상은 다광자(多光子) 현상의 일종으로,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광자(二光子) 현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광자 현상이란 두 번째 여성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괴퍼트 마이어 박사가 아인슈타인의 ‘광전효과’를 확대 해석해 두 개의 근적외선 영역대 광자가 양자역학이 지배하는 하이젠베르그 시간대에서 형광물질과 상호작용할 때 가시광선 영역의 형광을 관찰할 수 있다고 증명한 이론을 말한다.”

이후 과학자들은 이광자 현상을 확장하면 세 개의 광자가 하이젠베르그 시간에서 물질과 상호작용해야 하는 삼광자 현상도 가능하다고 여겼으며, 이 모든 것을 통틀어 다광자 현상이라고 한다. 즉, 삼광자 현상은 세 개의 근적외선 영역대 광자가 하이젠베르그 시간대에서 형광물질과 상호작용해 가시광선 영역의 형광을 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연구팀은 무독성 황화아연 나노입자 삼광자 흡수현상을 통해 생체 내에서도 고해상도 이미징을 구현, 암 조직을 보다 정밀하게 구분할 수 있게 했다. 이는 기존의 근적외선 광학 현미경의 해상도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어서 더욱 주목을 받는다. 또한 이번 연구 결과는 몸에서 대사가 가능한 이온으로 구성된 무독성 반도체 나노입자(ZnS)를 동물실험에 적용한 첫 번째 실험 성공 사례이기도 하다.

“황화아연 자체에서 나오는 형광에너지는 자외선을 흡수‧방출하기 때문에 중금속기반의 나노입자를 감싸서 독성을 줄여 주는 용도로만 사용되었을 뿐, 그 자체로는 사용이 불가능했다. 여러 원소들을 황화아연내부에 도핑시켜 에너지 발산 효율이 높은 것을 찾았는데 그것이 바로 망간이었다. 망간이온의 도핑을 통해 삼광자흡수현상의 높은 효율과 노이즈 대비 신호에서 보다 선명한 오렌지색 신호를 얻게 된 것이다.”

독성없는 나노입자 암 치료 길 열다
이번 연구의 가장 큰 장점은 아연과 황, 망간 등 생체대사물질을 사용한 무독성의 나노입자를 개발했다는 것과 이 나노입자의 삼광자흡수현상을 통해 생체 내에서 고해상도 이미징을 구현했다는 점이다. 더불어 나노입자의 표면처리를 통해 특정 암조직을 찾아내도록 가공할 수 있으며, 생체 내에서 세포수준(마이크로미터)의 크기까지 관찰이 가능한 고해상도의 생체광학영상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 적외선 영역대의 삼광자를 흡수한 나노입자가 오렌지색을 발광해, 콜라겐 (파란색)으로 둘러쌓여 있는 암조직 내부의 암세포들을 선명하게 관찰할 수 있다(오렌지색).  ⓒIBS

따라서 저해상도 생체영상기술(MRI, CT 등)과 고해상도 세포영상기술(레이저 현미경 등)의 상호보완적 측면에서 고해상도 생체영상기술의 실현 가능성을 제시한 것에 가치를 둘 수 있는 셈이다. 특히 독성성분이 배출되지 않는 것과 관련해서는 실험을 통해 신뢰할 만한 결과를 얻기도 했다.

“기존의 효율이 좋은 나노입자들은 대부분이 중금속 기반으로 만들어졌고, 이는 독성문제로 인해 생체 내에 사용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연구에서 개발한 나노입자는 체내의 구성성분이면서 대사가 가능한 아연‧황‧망간으로 이루어져 있어 중금속 기반의 나노입자와 달리 체내 응용에 대한 차별성을 둘 수 있다. 아무리 체내 구성성분이라도 분해되지 않고 특정 기관에 축적되면 인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으나 해당 연구는 실험을 통해 이 모든 것을 확인했다. 적정량의 나노입자를 실험동물에게 주사했을 때, 조직학적, 혈청학적인 이상소견이 없었으며 특정 기관에 축적되지 않고 배출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연구는 현 교수팀이 생체에 적용 가능한 나노입자를 연구하고 이광자 현상에 관심을 가지던 중 우연히 삼광자 흡수현상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세포수준에서 더 나아가 실제 생체에 적용해보자는 목표를 갖고 연구를 진행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현택환 교수 실험실 소속이자 현재 스탠포드대학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활동 중인 유정호 박사와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춘천센터의 권승해 박사팀의 주도로 7년의 긴 시간 동안 연구가 진행된 것이다.

“그동안 고감도 나노입자를 개발하고 효율을 향상시키는 실험과 분광 및 삼광자흡수현상, EPR 등 나노입자 성질 분석, 세포와 동물실험을 통한 무해성 검증, 나노입자의 표면가공을 통한 암세포표지 및 동물모델에서의 이미징 실험 등을 수행했다.”

하나의 연구를 7년 동안 수행하는 것은 기나긴 기다림이 필요한 작업이다. 때문에 먼저 결과를 발표하는 게 중요한 과학기술계의 경쟁 구도 속에서는 더욱 큰 인내로 느껴진 시간일 수 있다. 현 교수는 연구를 수행하면서 전환점 역할을 한 시간들이 기억에 남는다고 이야기했다.

“유기용매상에서 만들어진 나노입자를 물로 치환시킬 때, 그 나노입자의 양자역학적 효율이 떨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까지의 기간과 세포이미징 성공 후 생체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장비의 안정성 확보(레이저파워, 감지기의 감도 등)와 실험조건을 찾아내기까지의 과정은 시간이 오래 걸렸던 난관이었다. 연구팀이 서로 격려해가며 밤낮으로 나노입자를 합성하고 광학영상에 적용하기를 반복해 최적의 나노입자를 만들고 조건을 찾아냈다.”

현 교수는 이 연구가 나노기술의 생명공학 및 의학 분야로의 응용 관점에서 두 가지 난제를 동시에 해결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고 언급했다. 첫째는 중금속을 배제한 반도체 나노입자의 생체광학영상을 최초로 구현했다는 점이며, 두 번째는 ‘삼광자 흡수 현상’이라는 비선형 광학 원리를 동물 실험에 적용, 고해상도 생체광학 영상을 구현한 첫 번째 사례라는 점이다.

“연구에서 개발한 나노입자의 구성요소를 보면, 아연은 세포 성장, 생식 및 면역 작용 등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황은 단백질의 구성 원소, 망간은 신체 내 효소반응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등 생명체에 반드시 필요한 물질들로 이뤄져 있다. 삼광자흡수현상을 통한 생체광학영상 기술은 분자영상(MRI, PET, CT)과 광학영상(Microscope, Endoscope)에 대한 상호보완성이 높아 생체조직 내에서 고해상도 영상 획득을 가능케 하고 무독성의 나노입자를 활용해 다양한 질병의 조기 진단 및 치료에 대한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현 교수팀은 앞으로 해당 연구를 통해 보여준 가능성을 실현하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대형동물의 뇌암 발생부위에서 정상조직과 뇌조직의 세포수준으로의 구별을 통한 정밀진단 기술을 발전시키고, 정상조직에는 전혀 손상을 주지 않고 암조직만을 완벽하게 제거할 수 있는 치료기술을 개발, 임상에 적용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저작권자 2013.03.0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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