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0일 수요일

창조경제를 위한 거대과학의 역할

창조경제를 위한 거대과학의 역할

[칼럼] 권 면 국가핵융합연구소장

 
 
 

▲ 권 면 국가핵융합연구소장 ⓒ국가핵융합연구소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창조경제’를 커다란 국정목표로 설정하고 경제의 재도약을 창출하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지식과 상상력을 기반으로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고 이를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 창출에까지 연결시키는 것이 구상의 중심에 있다고 하겠다. 이를 위해 새로운 생태계를 조직하고 기존에 견지해 오던 국정운영의 우선순위를 새로운 지표에 맞춰 재배열시키면서 도약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이럴 때면 기초과학 연구나 거대과학시설의 구축과 운영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약간의 정서적 이질성, 소외감 그리고 자연스런 냉소를 경험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창의와 창조는 친근한 단어이지만 경제가 붙어 주눅들게 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럴 때면 내가 하는 일이 쓸 데 없는 일 같고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벌여 괜히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는 것은 아닌지 자괴감을 느끼기도 한다.

기초연구가 미리 계획된 생산적인 결과를 내놓기 위한 목적기초연구와 동일시되고 대형연구시설은 사용자가 줄을 서서 사용료만 가지고도 운영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기준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이제 거의 사라졌지만, 여전히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느낌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이 둘을 잘 조화시켜 시너지가 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 이스라엘의 예를 많이 들지만 중요한 것은 결과물이 아니라 정책의 틀을 만드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고려된 조건들이다.

결과를 만들어 내도록 통제하는 시스템의 통합적인 구축과 경쟁적인 지원 방식은 잘 갖추지만, 그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기본적인 고려 조건인 기초과학과 산업화를 위한 과정의 차이점을 인정하고 각각의 분야에서 최고의 결과가 산출될 수 있도록 차별적인 운영 방식에 대한 벤치마킹은 아직 부족하다.

최근 유럽입자물리연구소에서 힉스입자의 발견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와중에 미국 텍사스대학의 노벨상 수상 물리학자인 와인버그 박사는 1990년대 미국에서 대대적으로 추진하다 좌절된 거대한 가속기 프로젝트인 초전도가속충돌장치 SSC를 건설하지 못한 회한을 ‘거대과학의 위기’라는 제목의 책에서 밝히고 있다.

미국이 그 프로젝트를 계속 추진했더라면 유럽이 지은 가속기인 LHC와 비슷한 비용으로 에너지가 더 높은 가속기를 훨씬 먼저 지을 수 있었고 그것을 통해 힉스입자 발견의 위업을 먼저 달성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 더욱 안타까워하는지도 모른다. 그 입자의 발견이 뭐가 그리 대수인가라고 물으면 그는 그것이 자연의 법칙을 알게 해 주기 때문이라면서 거기에 정부가 지원하는 것의 당위성을 주장하였지만 결국 경제적 이익의 원칙을 내세운 의회의 결정에 지고 말았다고 아쉬워한다.
▲ 국내 기술로 개발한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KSTAR) ⓒ국가핵융합연구소

누군가가 새로운 무엇인가를 발견하면 인류 전체의 지식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자위하고 발견자들을 축하해주면 되지만, 우리는 그들을 부러워하면서도 투자를 해 볼 엄두도 내지 못하면서 우리 과학자들은 왜 그것도 못하는가라는 비난의 소리가 나올까 두렵기도 하다.

거대과학은 과학시설 구축 비용이 많이 들고 그 비용은 어느 나라가 하든 비슷하다. 따라서 거대과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것은 과학기술 투자비용의 절대값이 좌우하는 것이지 어느 국가의 국민총생산 대비 연구개발 투자비의 비율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무턱대고 큰 비용을 들여 거대과학시설을 갖춘다고 과학선진국과 같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전체 연구비의 일정 부분을 거대과학시설에 사용하도록 미리 정해놓는 것이 중요하지만 연구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다각적인 방법을 모색해서 효율적인 투자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거대과학분야가 창조경제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연구결과를 활용해 산업화하는 과학비지니스벨트와 같은 자연적인 생태계 조성 외에 거대과학시설에 포함된 수많은 첨단, 극한 기술의 연구개발과 제작과 운영에 관련된 최첨단 기술력 중심의 중소기업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거대과학시설은 대개 공통된 기술 분야를 필요로 하며 공통된 기초과학기술을 다양하게 적용하는 분야가 많다. 국가적인 거대과학시설을 여러 곳 운영하면 충분히 이를 중심으로 거대과학시설을 중심으로 하는 첨단의 기술집약적인 중소기업 생태계가 새롭게 만들어질 수 있다.

거대과학은 창조경제를 견인할 수 있는 과학기술 개발의 인프라 역할과 함께 첨단 기술로 무장한 새로운 산업생태계를 육성하면서 창조경제를 뒤에서 지원할 수 있는 역할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권면 국가핵융합연구소장

저작권자 2013.03.2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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