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4일 일요일

현재진행형인 ‘결핵의 추억’

현재진행형인 ‘결핵의 추억’

24일은 제3회 결핵예방의 날

 
 
사이언스타임즈 라운지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 단풍잎만 채곡채곡 떨어져 쌓여 있네 / 세상에 버림받고 사랑마저 물리친 몸 /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 나 홀로 재생의 길 찾으며 외로이 살아가네.”

1960년대에 히트를 친 가수 권해경의 ‘산장의 여인’이란 대중가요 가사다. 이 노래는 작곡가 반야월이 6․25전쟁 직후 마산방송에서 근무할 때 국립마산결핵요양원(현 국립마산병원)에 위문공연 차 들렀다가 거기서 요양중인 한 여인의 사연을 듣고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6년 마산합포구 가포동에 들어선 결핵요양원은 결핵을 앓는 젊은 문인들의 피난처로도 유명했다. 나도향, 임화, 지하련, 권환, 이영도, 구상, 김상옥, 김남조 등 쟁쟁한 문인들이 이곳에 머물며 치료를 받았다. 민족문학의 상징이자 유신 독재에 대한 저항시인으로 유명했던 김지하는 서울 하숙방에서 체포된 후 마산결핵요양원에 구금당하기도 했다. 그 당시 이곳은 그만큼 외부와 철저히 격리된 곳이었다.
▲ 지난해 서울 청계광장에서 결핵 ZERO 캠페인의 일환으로 열린 '희망엽서 나누기 행사'. ⓒ연합뉴스
덕분에서 마산에서는 ‘결핵문학’이라는 독특한 문학세계가 피어나기도 했다. 결핵을 치료하기 위해 이곳에 머무르던 문인들이 끼친 영향과 더불어 결핵요양원 환자들이 자체적으로 발행한 동인지 등으로 인해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문학적 흐름이 생겨난 것이다.

당시엔 문인들뿐만 아니라 일반인 중에서도 결핵환자들이 매우 많았다. 심지어 ‘결핵왕국’이란 명칭까지 얻을 정도였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한때 잠복결핵환자가 90%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1953년 대한결핵협회가 창설된 후 1965년에 이르러서야 최초로 전국적 규모의 결핵실태조사가 이루어졌는데, 당시 조사에 따르면 활동성 결핵환자는 인구의 5.1%인 124만명이었다.

이후 결핵을 ‘망국의 병’으로 보고 국가 차원에서 대대적인 퇴치노력을 벌인 결과, 2000년엔 25만9천명, 2010년엔 3만6천300여 명으로 급감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분위기는 ‘크리스마스 씰’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OECD 국가 중 결핵 발생률 1위
크리스마스 씰은 대한결핵협회가 창설된 후 범국민적인 성금운동으로 확산되었는데, 매년 대통령을 비롯한 삼부요인은 물론 각계각층의 인사와 학생 등 전 국민이 이 운동에 참여해 결핵 퇴치 재원 마련에 일조했다.

그러나 이제는 연말이 되어도 크리스마스 씰을 학교에서 사들고 오는 학생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손편지가 자취를 감추면서 2003년부터 처음으로 씰에 스티커 방식을 적용해 편지 이외의 다른 곳에도 붙일 수 있게 제작되고 있으며, 모바일 씰이나 인터넷 씰, 이카드 및 전자파차단 스티커 등 모금의 방법을 다양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 2012년에 발행된 크리스마스 씰. ⓒ대한결핵협회
요즘 같은 시절에 결핵 환자가 어디 있다고 아직도 크리스마스 씰을 파는지 의아해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핵은 여전히 심각한 상태로 우리나라에 존재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12년에 작성한 ‘글로벌 결핵관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1년 기준으로 34개 OECD 회원국들 가운데 결핵 발생률, 유병률, 사망률이 가장 높다. 우리나라 인구 10만명당 2011년 새로 결핵에 걸린 환자 수(발생률)는 100명, 10만명당 현재 결핵환자 수(유병률)는 149명, 결핵으로 사망한 사람 수(사망률)는 10만명당 4.9명으로 나타난 것.

미국의 경우 발생률이 3.9명, 유병률이 4.7명, 사망률이 0.13명에 불과하다. OECD 평균과 비교해볼 때 우리나라의 경우 발생률은 약 8배, 유병률은 약 9배, 사망률은 6배를 넘는다. 발생률이 20명, 유병률이 26명, 사망률이 1.7명으로 나타나 역시 OECD 평균을 웃도는 일본과 비교해 봐도 우리나라가 3~6배 정도 높다.

높은 발생률과 사망률이라는 특징 외에 우리나라 결핵은 또 한 가지 중요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젊은 층에 결핵환자가 많다는 것이다. 2012년 보건당국에 보고된 집단 발병은 50건인데, 그중 80%가 학교에서 발생했다. 젊은 층의 결환환자들은 다른 사람과의 접촉이 적은 노인층 결핵환자에 비해 전염시킬 가능성이 훨씬 높을 뿐 아니라 비록 결핵이 완치되었다 하더라도 나이가 들어 면역력이 약해지면 결핵이 다시 재발할 수 있다는 문제점을 지닌다.

결핵은 대표적인 후진국 병으로 인식되고 있다. 결핵균이 몸에 들어온다 해도 영양 상태가 좋으면 병에 걸리지 않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쉽게 결핵에 걸리기 때문이다. 현재 가장 높은 발병률을 나타내고 있는 곳도 바로 아프리카나,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같은 가난한 지역이다.

결핵 진료비 국가 전액 지원 추진 계획
우리나라는 2012년 GDP 기준으로 세계 15위 수준의 경제규모를 자랑함에도 불구하고 대표적인 후진국 병인 결핵으로 고통 받거나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왜 여전히 많은 것일까.

결핵환자의 경우 초기 2개월은 15알, 그 뒤 4개월간 10알의 약을 먹어야 하므로 중간에 복약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결핵환자가 이처럼 약 복용을 중단하면 내성이 생기기 쉬운데, WHO는 최근 약제내성결핵이 전 세계의 결핵 통제를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약제내성결핵이란 1가지 이상의 결핵 치료약제에 내성균을 배출하는 경우를 말하는데, 크게 ‘다제내성결핵’과 ‘광범위내성결핵’으로 나누어진다. 아이나와 리팜피신이라는 약제에 모두 내성을 보이는 다제내성결핵은 2차적인 약물 방어가 필요하다. 광범위내성결핵이란 아이나와 리팜피신 내성에 추가해 2차 약제 중 최소 1가지에 동시에 내성을 보이는 경우이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다제내성결핵 환자 수도 1위를 차지했다.

다가오는 24일은 ‘세계결핵의 날’이자 우리나라에서 지정한 ‘결핵예방의 날’이다. 세계결핵의 날은 1883년 3월 24일 독일의 세균학자 로베르트 코흐가 결핵균을 발견한 지 100주년이 되던 해인 1982년에 결핵 예방 및 조기 발견을 위해 제정되었다.

우리나라도 대한결핵협회 주관하에 2010년까지 세계결핵의 날 기념행사를 실시해오다가 결핵 퇴치율이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자 국민적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2011년부터는 정부 차원에서 결핵예방의 날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제3회 결핵예방의 날을 앞둔 지난 20일 전병율 질병관리본부장은 결핵환자의 건강보험 외래 및 입원 진료비를 국가가 전액 지원하되 환자가 치료받아야 할 의무를 법에 명시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행 결핵 진료비는 산정 특례가 적용돼 본인부담금이 10%이지만, 그중 절반을 국가가 지원해 실질적인 본인 부담은 5%이다.

정부는 오는 2015년까지 결핵 발생률을 40명, 2020년까지 20명 수준으로 낮추는 ‘결핵퇴치 뉴 2020 플랜’을 추진중이다. 그때엔 정말 결핵이 추억 속의 질병으로 남기를 기대해 본다.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 2noel@paran.com

저작권자 2013.03.2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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