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3일 일요일

현대인의 치아상태가 엉망이 된 사연

현대인의 치아상태가 엉망이 된 사연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에세이 18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에세이   얼마 전 해외뉴스로 호주 ‘틀니남’이 화제가 됐다. 호텔에서 일하는 윌리암 캐너웰이라는 25세 청년은 3년 전 문득 생수가 맛이 없다고 느껴져 목이 마를 때 물 대신 콜라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그만 중독이 돼 하루에 6~8리터씩 마셨다고 한다. 그 결과인지 모르겠지만 심각한 충치로 이가 망가지자 하나둘 뽑아 결국 13개만 남았고 이마저 틀니를 위해 다 뽑았다고 한다.

캐너웰의 경우는 물론 극단적인 사례이지만(외국에까지 소개될 정도이니) 오늘날 사람들 대다수는 충치로 이 한두 개는 ‘때운’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치약, 칫솔도 좋고 이가 아프면 치과라도 가지만 그 옛날 수렵채취생활을 하던 우리 조상들은 치아 문제로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 기원전 14세기 고대 이집트인의 두개골. 이들의 치아와 턱이 현대인보다 훨씬 건강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Amarna Project 제공
 
그러나 이건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다. 20만년에 걸친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에서 대부분의 시기 동안 치아건강은 상당히 좋았기 때문이다. 발굴된 두개골 화석의 옥수수처럼 가지런한 치아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인류의 치아 건강에 노란 불이 켜진 건 1만여년 전 농경이 시작하면서부터이고 19세기 중엽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빨간 불이 들어왔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현대인들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치아가 부실한 시기를 살고 있다는 말이다.

영국 런던대 생고고학자(bioarchaeologist)인 사이먼 힐슨 교수는 2만 년 이전에 살았던 인류의 두개골 화석 수천 점을 조사했는데 충치가 있는 경우는 2%가 안 됐다. 그러나 농사를 짓기 시작한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평균 9%가 충치를 갖고 있었다. 탄수화물이 풍부한 곡물을 주식으로 먹기 시작하면서 치아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이들의 치아는 여전히 꽤 건강하다. 기원전 14세기 고대 이집트인의 두개골 사진을 보면 이들의 이가 얼마나 튼튼했는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유럽 역사에서 치아 건강이 급격이 나빠지기 시작한 건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이 설탕을 그리스로 들여오면서부터다. 그 뒤 로마시대와 중세시대를 거치며 설탕 소비가 꾸준히 늘었고 이에 비례해 치아건강은 악화됐다. 신대륙 정복과 사탕수수 농장, 산업혁명의 과정을 거치며 설탕 소비는 급증했고 20세기 들어 유럽과 북미 사람에서 충치가 있는 사람의 비율이 폭발적으로 늘어 50~90%에 이르렀다. 이런 추세는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수천 년 전 사람들의 구강 미생물 분석
▲ 16~18세기 독일인의 턱 뼈. 치아 상태가 엉망임을 알 수 있다.  ⓒLeslie Williams
저명한 과학저널 ‘네이처 유전학’ 2월 17일자 온라인판에는 치아 건강에 대한 인류학 연구 결과를 뒷받침해주는 최신 게놈분석기법을 동원한 생명과학 연구결과가 실렸다. 호주 애들레이드대 지구환경과학부 앨런 쿠퍼 교수팀은 수렵채취 생활을 했던 7천500년 전 사람부터 농사를 시작한 신석기인, 중세시대 사람 등 34개 두개골의 치아에서 치석을 떼어내 그 안에 있는 미생물의 DNA를 분석했다. 치석은 치아 표면을 덮고 있는 구강미생물과 이들에 대응하기 위해 면역계가 파견한 백혈구에 인산칼슘이 섞여 결정화된 덩어리다. 치석 결정 속에 갇힌 미생물의 DNA는 수천 년이 지나도 파괴되지 않고 보존돼 있다.

구강미생물 DNA 분석 결과는 인류의 발전 과정을 잘 반영했다. 즉 수렵채취 생활을 했던 중석기인들과 농경을 시작한 신석기인들 사이에서 구강미생물의 분포가 극적으로 바뀌었다. 특히 치주질환을 일으키는 포피로모나스 진지발리스(Porphyromonas gingivalis)의 비율이 높아졌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충치를 일으키는 스트렙토코쿠스 뮤탄스(Streptococcus mutans)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 박테리아는 청동기시대 사람들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결국 인류의 식생활 변화가 구강 환경의 변화로 이어졌고 따라서 오랜 세월에 거쳐 인류의 구강환경에 최적화돼 있던 미생물들이 급변하는 환경에 미처 적응하지 못하는 사이 유해한 미생물들이 들어온 것이다. 오늘날 급격한 기후변화로 토착종들로 이뤄진 생태계의 균형이 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다.

학술지 ‘분자생물과 진화’에도(2012년 12월10일 온라인판) 오늘날 충치의 만연과 관련된 흥미로운 논문이 실렸다. 소위 충치균으로 불리는 스트렙토코쿠스 뮤탄스가 어떻게 이런 악역을 맡게 됐는가를 진화적으로 분석한 연구결과인데 전 세계 사람들을 대상으로 57개의 시료를 채취해 충치균의 게놈을 분석한 뒤 비교해 진화과정을 재구성했다. 그 결과 이 녀석들은 약 1만 년 전부터 급증했고 변이를 거쳐 오늘날의 모습을 띠게 됐다고.

즉 이 과정에서 유전자 14개가 ‘선택’됐는데 이 유전자들은 당대사와 산을 견디는 능력에 관련된 기능을 한다. 즉 인류가 갑작스럽게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하기 시작하면서 구강에 자리잡기 시작한 스트렙토코쿠스가 이를 좀 더 효율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가 이뤄졌고 당을 대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산으로 구강이 산성 환경이 되면서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 역시 진화가 일어났던 셈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설탕이나 과당 같은 이당류, 단당류를 많이 먹기 시작하면서 스트렙토코쿠스는 구강미생물계에서 절대강자가 됐다. 이 녀석들이 당을 섭취하면서 내놓는 산으로 치아의 에나멜이 녹아내리면서 충치가 만연하게 된 것이다.
▲ 작은 얼굴을 선호하는 요즘 사람들은 턱이 발달할 수 있는 질긴 음식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아래턱 발육 부진으로 얼굴이 작아졌지만 반대 급부로 치아가 부실해졌다.  ⓒ강석기

쓰지 않으면 발육부진으로 이어져

현대인의 치아건강을 위협하는 건 충치가 전부는 아니다. 곱게 빻은 밀가루와 잘 도정된 쌀, 다양한 요리기법의 개발로 음식들이 부드러워지면서 수렵채취를 통해 거친 음식을 먹는데 최적화된 구강구조가 망가지고 있다. 즉 거친 음식을 씹어야 치조골(이틀뼈)가 자극을 받아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데 요즘 아이들은 그렇지 못해 특히 아래턱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다. 그 결과 윗니와 아랫니가 제대로 맞물리지 않는 부정교합이 급증하고 있고 이가 나올 공간이 확보되지 못해 사랑니가 속에 박혀있는 경우도 많다.

미국 서던일리노이대 로버트 코루치니 교수는 “잇몸질환과 부정교합은 선사시대 치아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며 “아이들의 턱을 강화하기 위한 구강 운동 프로그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치아 질환의 만연은 몸의 진화 속도가 문화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 kangsukki@gmail.com

저작권자 2013.02.2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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