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으로부터 기억을 이어받다
로렌초 코스타의 ‘뮤즈들의 왕국’
명화 산책 이름이나 얼굴, 숫자를 한 번만 보아도 기억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러 번 만났어도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사람마다 기억력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기억을 담당하는 것이 뇌의 해마다. 뇌의 해마는 끊임없이 들어오는 정보를 기억하는 역할을 하는데, 해마가 정상적이지 않을 때에는 인지 기능을 상실한다. 장기적으로 해마 손상으로 인한 것이 치매이며, 단기적으로 기억을 잃어버리는 경우를 기억상실증 혹은 건망증이라고 한다. 기억상실증의 어원은 그리스 신 므네모시네에서 유래하는데 영어로 기억상실증을 amnesia라고 한다. amnesia에서 a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며 mnesia는 그리스 여신 므네모시네에서 유래한 기억을 뜻한다. 올림포스에 거주하는 제우스신은 지상에서 일어나는 인간들의 일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신들의 나라에서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제우스신은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를 찾아가 자신의 고민을 상담한다. 므네모시네 여신과의 상담 중에 제우스신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빠지고 만다. 두 신은 9일 밤을 함께 하며 사랑을 한다. 그로부터 10개월 후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는 9명의 무사이 딸을 낳는다. 무사이들은 어머니 므네모시네로부터 기억을 이어받아 신들의 나라와 인간들의 시적 영감과 모든 지적 활동을 주관하며, 신들과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정리하고 기억하게 해 두 세계를 이어나간다.
예술적 영감을 주관하는 9명의 무사이들은 고유의 주관영역이 있다. 칼리오페는 서사시와 트럼펫, 클리오는 역사와 명성, 에라토는 연애시와 현악기, 에우페르페는 음악과 관악기, 멜포메네는 비극과 연극 가면, 폴림니아는 악기, 테르프시코라는 무용과 시 그리고 현악기, 탈리아는 희극과 희극 가면, 우라니아는 점성술과 천구를 담당한다. 초창기 신화에서는 무사이 같은 예술가들을 무시코스라고 불렀으며 예술을 무시케라고 했다. 노래와 지혜로운 무사이를 숭배해 무사이의 신전을 의미하는 무사이온이 생겨났다. 후에 무사이온은 학문을 관장하는 장소로 변했다가 인류가 남긴 유물을 간직하고 있는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박물관을 뜻하는 뮤지움은 무사이에서 유래한 것이다. 9명의 무사이들은 올림포스에서 열리는 신들의 만찬에서는 시와 음악으로 분위기를 돋워 주는 역할을 하지만 평상시에는 헬리콘 산에서 지내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평상시의 무사이들을 그린 작품이 로렌초 코스타의 ‘뮤즈들의 왕국’ 혹은 ‘이사벨라 데스트의 궁정의 알레고리’다. 호숫가 근처 산 중턱 공원에서 무사이가 서서 악기를 연주하고 있고 바닥에 앉아 있는 무사이들은 동물들을 보살피고 있다. 언덕 위의 나무는 향나무를 나타내는데, 신화에 따르면 헬리콘 산은 비탈에 유독 향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화면 왼쪽 맑은 호수 역시 헬리콘 산의 물을 의미한다. 신화에 따르면 산의 물이 너무 맑아 독사의 독니까지 녹아 없어졌다고 한다. 호수에 정박 중인 배와 언덕 아래의 사람들은 신과 인간들을 연결시켜주는 무사이들의 역할을 나타낸다. 로렌초 코스타(Lorenzo Costa, 1460~1535)의 이 작품에서 바닥과 나무 둥치에 앉아 있거나 하늘을 바라보면서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모습은 평상시의 무사이들을 나타낸다. 이 작품에서 무사이들의 각각의 특징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9명의 무사이들이 개인적인 삶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그림 속의 무사이들은 별다른 특징 없이 서로 손을 잡고 나타난다. 그들이 손을 잡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은 과학과 예술의 밀접한 관계를 의미한다. |
저작권자 2013.03.05 ⓒ ScienceTi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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