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의 시각화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장하석교수 교수 강연 열려
우리 주변의 물질들은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분자는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원자와 분자’가 보이지 않는데 어떤 모양인지 어떻게 아느냐고 물어본다면 당신은 어떤 대답을 하겠는가.
유기화학자들이 단순히 ‘분류라도 해보자’라는 의도에서 사용한 원자모형으로 인해, 19세기 중반 ‘유형이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유형이론’은 물을 H2O로 전제하고 분자의 구조는 산소원자 하나가 양쪽으로 수소 원자를 하나씩 잡고 있다고 가정했다. 여기서 수소원자를 빼고 다른 것을 넣게 되면 그 계열이 원자를 계속 만들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수소원자를 하나 빼고 그 자리에 넣으면 C2H5를 넣으면 에틸기가 된다. 그리고 다른 수소원자를 빼고 C2H5를 넣으면 에테르가 표현된다. 물론 이는 물을 기본으로 하는 물 유형이지만, 다른 유형을 기본으로 해서 다른 유기화합물을 설명할 수 있다. 그래서 암모니아 유형, 염산유형 등 다양하게 나올 수 있다.
유형이론으로 인해 분위기 반전
사실 유형이론은 분류를 위한 것이었다. 뭘 설명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진실성을 부여하지 않고 만든 모델들인 셈이다. 그런데 유용성을 보이자 "전적으로 거짓말일리는 없다. 진실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장 교수는 “19세기 중반 호프만의 당구공(크로켓) 모형과 벤젠 분자구조를 밝혀내서 유명한 케쿨레의 소세지 모형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탄생됐다.”며 “특히 호프만의 모형은 둥근 공에 막대기를 꽂아 분자를 설명하는데, 이 모델은 최근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내는 데도 사용됐고 현재도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모델을 통해 근대 화학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원자가’ 개념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원자가’는 한 원자가 다른 원자 몇 개 결합할 수 있는지를 표현한 것이다. 물 분자도 역사 원자가로 설명이 됐다. 과학자들 사이에서 물의 분자식은 H2O라고 인정하기 시작했다. 원자론 이론이 시작되고 나서 50여 년이 지나서였다. 참으로 기나긴 여정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합의를 보는 그 시점에서 거기에 대한 확증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원자를 기반으로 한 모형들이 유용했던 것이었지, 원자나 분자 모델이 경험적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모형이 유용하다고 해서 진실하다고 덜컥 믿어도 되나?’라는 질문으로 출발한 실재론에 대한 논의가 아직도 치열한 이유이다.
하지만 장하석 교수는 “케쿨레도 '1867년 원자가 존재하는지 안하는지 묻는 것은 의미 없다. 그런 것은 형이상학에서나 물어보는 것’이라고 했다.”며, “확실히 알기 불가능한 그런 진리를 따지기 보다는 우리 이론적 사고를 도와주고 경험적 탐구를 잘 열어주는 모델이라면 여러 가지 병행해서 다양하게 동시에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과학의 진보에는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자신의 의견을 밝히며 강연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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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케임브리지대학 과학철학과 장하석 교수 ⓒ고등과학원 |
지난 26일,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보이지 않는 것의 시각화: 19세기 원자 모델과 실재론’이란 문화 강좌가 열렸다. 고등과학원과 아산정책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강좌의 강연자로 나선 사람은 케임브리지대학 과학철학과 장하석 교수였다.
그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가지고 우리가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원자와 분자에 대해서 ‘어떤 역사적 과정이 있었는지, 어떤 과학적·철학적 논쟁이 있었는지’를 물의 분자 구조를 예를 들어 강연했다.
설득적인 근거 없이 원자, 분자 구조 그려
유럽과학자들은 1800년대부터 심도 있게 원자이론을 전개했다. 영국 과학자 돌튼은 원자분야에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과학적 원자이론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돌튼은 ‘화학철학의 새로운 체계’라는 저서에 원자와 분자의 그림을 그려 놓았다. 돌튼은 여기서 두 가지 원소가 합쳐져서 이루어지는 것을 가장 기본적인 화합물이라고 여기고 원자들을 일대일로 결합해 놓았다.
물도 마찬가지였다. 돌튼이 그린 물의 분자 구조는 'H-O'였다. 장하석 교수는 “돌튼 역시 이론을 내놓았지만 원자를 셀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분자들은 가능 가장 단순한 이루어져 있다고 가설을 세우고 그림을 그렸지만 이에 대한 설득적 근거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아보가드로는 게이뤼삭의 기체반응 법칙을 기반으로 돌튼의 물 분자 구조에 문제를 제기했다. 게이뤼삭은 화학반응이 기체 상태에서 물질 간에 일어날 때에는 관련된 기체간의 부피가 서로 간단한 정수비를 이룬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아보가드로는 이 정수비를 가지고 물 분자 모형을 설명했다. 하지만 논리 전개과정에 여러 가지 문제와 부딪히면서 가설을 덧붙이게 된다. 그 결과 물의 이원자 구조론이 나오게 되고, 알고 있는 물 분자식인 H2o도 이때 등장하게 된다.
그런데 베르젤리우스에 의해 아보가드로의 이론은 벼랑 끝으로 몰린다. 당시 ‘원자들이 양전하 음전하는 당기지만 같은 전하끼리는 밀쳐낸다,’는 이론이 있었다. 베르젤리우스는 ‘수소원자는 플러스이고 산소원자는 마이너스라서 결합하지만 두 개의 수소는 같은 플러스라서 밀어내기 때문에 붙어있을 수 없기 때문에 H2O라는 물 분자 구조는 논리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100년 지나고 나서 전자가 발견되고 양자역학이 나오고 나서야 공유결합으로 설명이 되었지만, 그 당시 이론체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여서 아보가드로 이론은 실패한 이론으로 받아들여졌다.”고 언급했다.
원자론에 대해 과학계 논쟁이 너무 치열해지자 "관측 불가한 원자나 분자와 같은 것에 대해서는 증명할 수 없는 가설과 논의하지말자"는 실증주의적 태도가 확산됐다. 경험할 수 없는 것은 그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여기는 관점으로 실증주의적 과학자들은 원자 그림 그리는 것 자체를 반대하기도 했다.
유기화학자들, 분류를 위해 시각화 시작
그래도 원자와 분자를 그려보는 시도는 많았다. 실재론적 입장을 취하던 사람들이 그랬다. 그들은 보이지 않은 것에 진리를 추구하는 목적으로 가설을 세워서 그림을 그렸는데, 그들은 "과학이론에서 말해주는 내용은 관측이 불가능해도 글자그대로 진리이다. 아니면 적어도 진실성 있는 이론을 세우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던 과학자들이었다.
실증론도 아니고 실재론도 아니면서 보이지 않은 것을 시각화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유기화학 분야에 있었던 과학자들이다. 장 교수는 “그들은 식물과 동물에서 추출되어 나오는 수천 종류의 물질들이 전혀 체계적으로 정리하지 못해 고충이 많은 상황이었다.”며, “유기화학자들은 수많은 화합물들이 혼잡하게 질서도 없이 나열되어 있는 유기화학 세계는 정글과도 같다고 한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가지고 우리가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원자와 분자에 대해서 ‘어떤 역사적 과정이 있었는지, 어떤 과학적·철학적 논쟁이 있었는지’를 물의 분자 구조를 예를 들어 강연했다.
설득적인 근거 없이 원자, 분자 구조 그려
유럽과학자들은 1800년대부터 심도 있게 원자이론을 전개했다. 영국 과학자 돌튼은 원자분야에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과학적 원자이론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돌튼은 ‘화학철학의 새로운 체계’라는 저서에 원자와 분자의 그림을 그려 놓았다. 돌튼은 여기서 두 가지 원소가 합쳐져서 이루어지는 것을 가장 기본적인 화합물이라고 여기고 원자들을 일대일로 결합해 놓았다.
물도 마찬가지였다. 돌튼이 그린 물의 분자 구조는 'H-O'였다. 장하석 교수는 “돌튼 역시 이론을 내놓았지만 원자를 셀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분자들은 가능 가장 단순한 이루어져 있다고 가설을 세우고 그림을 그렸지만 이에 대한 설득적 근거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아보가드로는 게이뤼삭의 기체반응 법칙을 기반으로 돌튼의 물 분자 구조에 문제를 제기했다. 게이뤼삭은 화학반응이 기체 상태에서 물질 간에 일어날 때에는 관련된 기체간의 부피가 서로 간단한 정수비를 이룬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아보가드로는 이 정수비를 가지고 물 분자 모형을 설명했다. 하지만 논리 전개과정에 여러 가지 문제와 부딪히면서 가설을 덧붙이게 된다. 그 결과 물의 이원자 구조론이 나오게 되고, 알고 있는 물 분자식인 H2o도 이때 등장하게 된다.
그런데 베르젤리우스에 의해 아보가드로의 이론은 벼랑 끝으로 몰린다. 당시 ‘원자들이 양전하 음전하는 당기지만 같은 전하끼리는 밀쳐낸다,’는 이론이 있었다. 베르젤리우스는 ‘수소원자는 플러스이고 산소원자는 마이너스라서 결합하지만 두 개의 수소는 같은 플러스라서 밀어내기 때문에 붙어있을 수 없기 때문에 H2O라는 물 분자 구조는 논리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100년 지나고 나서 전자가 발견되고 양자역학이 나오고 나서야 공유결합으로 설명이 되었지만, 그 당시 이론체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여서 아보가드로 이론은 실패한 이론으로 받아들여졌다.”고 언급했다.
원자론에 대해 과학계 논쟁이 너무 치열해지자 "관측 불가한 원자나 분자와 같은 것에 대해서는 증명할 수 없는 가설과 논의하지말자"는 실증주의적 태도가 확산됐다. 경험할 수 없는 것은 그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여기는 관점으로 실증주의적 과학자들은 원자 그림 그리는 것 자체를 반대하기도 했다.
유기화학자들, 분류를 위해 시각화 시작
그래도 원자와 분자를 그려보는 시도는 많았다. 실재론적 입장을 취하던 사람들이 그랬다. 그들은 보이지 않은 것에 진리를 추구하는 목적으로 가설을 세워서 그림을 그렸는데, 그들은 "과학이론에서 말해주는 내용은 관측이 불가능해도 글자그대로 진리이다. 아니면 적어도 진실성 있는 이론을 세우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던 과학자들이었다.
실증론도 아니고 실재론도 아니면서 보이지 않은 것을 시각화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유기화학 분야에 있었던 과학자들이다. 장 교수는 “그들은 식물과 동물에서 추출되어 나오는 수천 종류의 물질들이 전혀 체계적으로 정리하지 못해 고충이 많은 상황이었다.”며, “유기화학자들은 수많은 화합물들이 혼잡하게 질서도 없이 나열되어 있는 유기화학 세계는 정글과도 같다고 한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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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6일,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보이지 않는 것의 시각화: 19세기 원자 모델과 실재론’이란 문화 강좌가 열렸다. ⓒ고등과학원 |
유기화학자들이 단순히 ‘분류라도 해보자’라는 의도에서 사용한 원자모형으로 인해, 19세기 중반 ‘유형이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유형이론’은 물을 H2O로 전제하고 분자의 구조는 산소원자 하나가 양쪽으로 수소 원자를 하나씩 잡고 있다고 가정했다. 여기서 수소원자를 빼고 다른 것을 넣게 되면 그 계열이 원자를 계속 만들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수소원자를 하나 빼고 그 자리에 넣으면 C2H5를 넣으면 에틸기가 된다. 그리고 다른 수소원자를 빼고 C2H5를 넣으면 에테르가 표현된다. 물론 이는 물을 기본으로 하는 물 유형이지만, 다른 유형을 기본으로 해서 다른 유기화합물을 설명할 수 있다. 그래서 암모니아 유형, 염산유형 등 다양하게 나올 수 있다.
유형이론으로 인해 분위기 반전
사실 유형이론은 분류를 위한 것이었다. 뭘 설명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진실성을 부여하지 않고 만든 모델들인 셈이다. 그런데 유용성을 보이자 "전적으로 거짓말일리는 없다. 진실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장 교수는 “19세기 중반 호프만의 당구공(크로켓) 모형과 벤젠 분자구조를 밝혀내서 유명한 케쿨레의 소세지 모형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탄생됐다.”며 “특히 호프만의 모형은 둥근 공에 막대기를 꽂아 분자를 설명하는데, 이 모델은 최근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내는 데도 사용됐고 현재도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모델을 통해 근대 화학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원자가’ 개념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원자가’는 한 원자가 다른 원자 몇 개 결합할 수 있는지를 표현한 것이다. 물 분자도 역사 원자가로 설명이 됐다. 과학자들 사이에서 물의 분자식은 H2O라고 인정하기 시작했다. 원자론 이론이 시작되고 나서 50여 년이 지나서였다. 참으로 기나긴 여정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합의를 보는 그 시점에서 거기에 대한 확증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원자를 기반으로 한 모형들이 유용했던 것이었지, 원자나 분자 모델이 경험적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모형이 유용하다고 해서 진실하다고 덜컥 믿어도 되나?’라는 질문으로 출발한 실재론에 대한 논의가 아직도 치열한 이유이다.
하지만 장하석 교수는 “케쿨레도 '1867년 원자가 존재하는지 안하는지 묻는 것은 의미 없다. 그런 것은 형이상학에서나 물어보는 것’이라고 했다.”며, “확실히 알기 불가능한 그런 진리를 따지기 보다는 우리 이론적 사고를 도와주고 경험적 탐구를 잘 열어주는 모델이라면 여러 가지 병행해서 다양하게 동시에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과학의 진보에는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자신의 의견을 밝히며 강연을 끝냈다.
저작권자 2013.02.28 ⓒ ScienceTi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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